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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미럴
알바 두 탕을 끝내고 집에 와서 홍백전을 틀었다.
마지막 부분이 하고 있다.
맥주를 홀랑홀랑 마시면서 보는데 동방신기가 지나갔다.
아, 쟤들 나왔구나.
도시떼가 인기가 많았나 보다.
홍백전도 나오고.
호홍

12월은 알바의 연속이었다.
마지막 날 까지 난 알바 두탕을 뛰고 해가 가는 것도 아무런 감흥이 없을 정도로 지쳐있었다.
아… 이렇게 해를 보내는 거 좋지 않은데…

나의 2008년을 되돌아 봤다.

1월:
새해가 밝았다. 26살이 되었다는 기분에 얼른 워홀을 다녀와야겠다고 생각.
1월 초 구직자릴 알아 보다가 잡 코리아에서 어느 유학원이 올린 스키장 알바를 발견했다.
어차피 워홀비자도 있겠다 지원.
합격확정이 되면 연락을 준다는 전화 한 통 오고 연락이 없다.
그렇게 20일이 지나고 대뜸 유학원에서 전화가 왔다.
'일본 갈 준비는 다 되었냐. 이달 말에 나가 줬음 좋겠다.'
이 사람들이 연락도 안 줘서 불합격으로 생각하게 만들어 놓고 취직 준비하는 사람한테 일본 가란다.
뭐 이런 유학원이 다 있나 싶으면서도 걍 나가기로 한다.
왜냐면 맨땅에 헤딩으로 가기엔 난 돈이 없다.
그래서 수중의 돈으로 뱅기삯에 보험들고 나니 50만원이 남았다.
단돈 5만엔 들고 일본으로 향하기로 결정.
국제면허/인감 등 일본 갈 준비로 바쁨.

2월:
설 연휴 할무니 할부지를 뵙고 서울에 돌아오자 마자 쉴틈도 없이 일본으로 출국.
일본 분위기 물씬 나는 차를 타고 스키장에 도착한다.
열심히 노동력 착취를 당하면서 말도 안 돼는 일을 다 도맡아 함.
오직 낙이라곤 일 끝나고 방에서 언니랑 채팅하고 무도 다운 받아 보는 것이 다였다.

3월:
일본인 눈꽃언니가 등장. 같이 대화가 통하는 유일한 사람이 생겼다.
언니도 나도 이 말도 안 돼는 시스템에 현기증을 느끼고,
둘 다 마지막은 화려하게 불태우고 도쿄로 이사를 간다.
외국인 등록증 발급/도코모 휴대전화기 구입

4월:
도쿄로 이사를 왔다. 신주쿠의 어두침침한 히키코모리 방 같은 곳에서 새 삶을 시작한다.
커피숍 아르바이트 결정.
언니랑 정팔이가 놀러 왔다 가고, 사촌언니네 팀이 놀러왔다 가고.
허전해 진다.

5월:
황금연휴는 '일'로 하얗게 불태운다.
필리핀인들 말투가 원래 저런 건지 날 싫어하는 건지. 여하튼 필리핀 여자들이 날 자꾸 왕따 시킨다. ㅇㅅㅇ
하지만 차갑게 무시. 그들을 열받게 만들어 준다. 가끔 그들의 물건을 집어 던지기도 한다.

6월:
왕따와 사장의 헛소리에 열받은 첼씨는 난동을 부리고. 그 일을 역사에선 첼씨의 난 이라 적는다. 필리핀인이랑 잘 해먹어라 라며 커피숍을 나오고. 도쿄라고 하기엔 너무나도 카나가와 스러운 곳으로 이사를 간다.
구직구직구직구직. 신주쿠에서 보다 심각할 정도로 알바가 안 구해진다.

7월:
더럽게 알바도 안 구해지고 눈꽃언니의 소개로 가려고 했던 농업알바는 맞지도 않는 좌식생활 덕분에 재발한 허리 통증으로 포기.
겨우겨우 맥도날드에 채용이 되지만 거의 동시에 시모키타자와에 놀러 갔다 면접 보고 온 편의점에 채용이 되어서 시모키타자와로 이사를 결정했다.
더불어 시부야의 한국 음식점에도 채용이 되었다.(허리가 안 좋아서 불안 한 마음도 있지만  걍 해보지 뭐)

8월:
시모키타자와 이사. 이사 첫 날 부터 애들이 유카타 입고 소란스럽길래 따라 나선 요코하마 불꽃놀이. 도쿄라고 하기엔 너무나도 카나가와 스러운 곳에 살 때도 한 번 안 가본 요코하마를 이 때 가봤다. 40일을 알바도 안 하고 놀은 데다가, 이사한다고 무리하는 바람에 단돈 1만엔으로 한 달을 버티게 된다.
8월 말 시부야 한국음식점의 노동력 착취로 보험차 까페 알바를 구해 둠.

9월:
9월 역시 8월과 다름없이 돈이 부족했지만 사촌 오빠 커플이 놀러오면서 이것저것 사주고 챙겨줘서 풍성한 삶을 살 수 있었다.
시부야의 한국인 음식점에서 일본 애들은 시프트 다 빼주면서 난 오빠가 일본에 여행오는 데도 안 빼줘서 삐짐.
거기다가 일본애들 빼주느라고 나 혼자 홀을 돌게 만드는 그지 같은 시프트를 짜 뒀길래 유종의 미를 거두려다가 열라 힘들 때 알바 하나 없게 만들고 나와버림.
만나는 사장 마다 경영 지식이 새파란 나 보다 못한 놈들만 만나서 참 한탄스럽게 생각함.
9월 말 사촌언니의 결혼식차 4박5일간 한국 방문.

10월:
까페 시프트가 늘어 남. 호주에서 워홀 하던 김작가가 귀국길에 들림.
같이 열라 놀다가 또 탕진.
돈이 벌릴라 하면 한국 간다고 그지 되고, 월급 받자마자 열라 놀다가 그지 됨.
11월 언니 생일에 맞춰 선물 사다가 알그지 됨.

11월:
언니 생일 선물로 ems를 보내고 아무 생각 없이 먹고 놀다가 그지 됨.
가을음악회에 같이 가자고 꽃양을 꼬셔 놓고 결국 얻어 먹음.
안 되겠다 싶어 12월 부터 미친 시프트를 짜기로 결정.
연말엔 망년회로 쉬는 아이들이 많을 거란 정보를 입수.
몸 생각은 1월에 하기로 하고 12월엔 죽어 나기로 함.

12월:
일X일=맥주
5일을 제외한 모든 날에 일을 함.
더불어 12월 후반 시프트는 한 시간씩 일을 더 늘렸음.
막판엔 정말 죽을 것 같다는 생각에 덜컥 겁부터 남.
남들 시상식 볼 때 일 하고, 남들 카운트다운 할 때 자고, 그래도 남들 하는 건 따라해보겠다고 나갔다가 몸살만 안고 돌아옴.

시작은 노동력 착취였지만, 후반은 스스로 착취로 끝냄.
2008년 참 길었다. 징그럽다.

하지만 1월은 행복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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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Chelse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