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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더운 7월 더위 먹은 처자의 어느 날.

더워서 정말 이렇게 죽는 구나 싶을 지경이다.
날 때 부터 더위에 약한 처자는 그 날도 녹아가고 있었다.
그리고 이유없이 찾아 온 우울증에 계속 짜증만 부리고 있다.
괜시리 서글퍼져서 울다가, 누군가 대화해 줄 사람이 필요해서 인터넷 메신저를 뒤적 거리다가, 휴대전화기 전화번호첩을 열었다가 닫았다가…

젊은 나이에 허리를 다치는 바람에 기대하고 있던 나가노 농협 아르바이트가 취소 됐다.

한 달 정도 놀은 데다가 겨우 구한 아르바이트.
거기다가 일생에 한 번 경험 할까 말까 한 농협 아르바이트다.
굉장히 기대 하고 있었는데 순식간에 똑같은 일상으로 돌아와 버렸다.

처자의 우울증은 아마도 무더운 여름 기력이 쇠해진 자신 보다,
기대하고 있던 일이 물거품이 된 슬픔이 컸던 것 같다.

인터넷 메신저에서 전속 상담맨을 발견했다.
- 바쁜데 말 걸어도 되나?
잠깐 고민하지만 이미 이성은 더위에 지쳐 뇌와의 연결이 끊어져 있었다.
막무가내로 말을 걸었는데 다행히 오랜만에 한가하단다.
이것 저것 말을 하던 중 룸메가 귀가해 왔다.
갑자기 처자는 네이트온 대화 중 갑자기 나간다며 작별 인사를 하고,
룸메의 교통 패쓰를 빌려다가 뛰쳐 나갔다.
이미 밖은 어두 컴컴해져 있어서 덥다는 느낌은 적었다.

나를 뛰게 만든 것.
나를 움직이게 만든 것.
기력도 없고 허리도 아픈 녀석을 움직 인 것.

한달 반 정도 전에 시모키타자와에서 본 코끼리 인형이다.

자전거를 타고 미친 듯이 패달을 밟아 8시 경 오다큐 마치다 역에 도착했다.
급행을 타고 시모키타자와에 도착 한 시각은 8시 반이 조금 넘어 있다.
다시 미친듯이 달린다.
달리고 달려 인형이 팔던 집 까지 갔지만,
일본이 그렇다.
8시면 가게들이 문을 다 닫는다.
제발 9시 까지 영업을 해달라고 빌면서 뛰어 온 건데.
허무함에 멍하니 그 자리를 지키고 서 있다.

그리고 터벅터벅 시모키타자와 거리를 방황한다.
그제서야 허리의 통증이 다시 시작된다.
아프다.
걷기 힘들어서 어디 들어가 앉을까 하다가 갑자기 우울해져서 그냥 역으로 돌아갔다.

마치다에 도착하고 혼자 멍하니 돈키호테에서 박력분을 살까 말까 고민한다.
떨어지긴 했는데 왠지 목적없이 만드는 케이크가 만들고 나면 너무 슬퍼서 남자친구 생기기 전 까진 절대 만들지 말아야지 라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요리 하는 사람들은 다 공감하리라.
맛있게 먹어 주는 사람이 없는 음식은 목적 없는 여행과도 같다는 것을…

그냥 나가려다가 기린 맥주에서 나온 노도고시랑 안줏거리를 하나 사들고 나왔다.
다시 자전거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는데 허리가 많이 아프다.
- 그래도 자전가 타면 금방이니까 괜찮을 거야
통증이 쌔서 쌔게 달리진 못 하고 천천히 가는데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왠지 시원해서 기분이 좋았다.
집에 도착하자 들어가기 싫어졌다.
집에 가서 우산만 들고 나왔다.
혼자 공원에 가서 자릴 잡고 앉아서 맥주를 마시기 시작했다.
더운 여름 꿉꿉한 살갖에 짜증지수가 높아져 있는 내게 시원한 맥주가 목구멍을 타고 내려가면서 날 다독거려 준다.
문뜩 하늘을 바라보니 나뭇잎들 사이로 별들이 보인다.
아니, 별들이라고 할 정도로 많은 별은 아니다.
마치다도 도시인지라 까만 밤은 거의 보기 힘들 정도라서 어렴풋이 별이 보인다고 하는 편이 나을 것 같다.

바람이 분다.
시원한 바람…
비는 우산을 들고 나왔을 때 부터 내리지 않았다.
잠깐 내린 비로 바람이 시원해져 있다.
홀짝 홀짝.
맥주를 다 마시고 멍 하니 앉아 있었다.

우울하다는 감정은 맥주의 쥐꼬리 만한 알콜 농도에 흐릿해져 가지만,
마음이 텅 빈 느낌은 여전하다.

- 한국에 가고 싶다.
요새들어 자주 하는 소리다.
가 봤자 아무 것도 없는데 그냥 현실이 힘드니까 도망칠 곳을 찾는다.
약해 빠진 인간.
한국에서의 생활을 회상해 본다.
역시 일본에 있는 편이 100배 좋다는 결론을 내린다.
갑자기 나약한 내 자신이 우스워졌다.

터벅터벅 집으로 돌아간다.
아리까리한 취기에 기분이 좋다.

무더운 7월의 아침.
벌떡 일어나서 샤워를 하고 외출 준비를 한다.
코끼리 다리 주제에 또 핫팬츠를 입어 준다.
한국에선 절대 안 하던 짓인데 이상하게 일본에 온 후로는 대범해졌달까…
- 남의 동네니까 괜찮아
라며 이 짓 저 짓 잘 하게 된다.

자전거를 타고 마치다 역 근처에 무단 주차를 한 뒤,
다시 시모키타자와에 간다.
- 오늘은 꼭 사야지.
처음 봤을 때 부터 엄청 마음에 들었었는데 왜 안 샀는지 후회가 된다.
불과 보름 전에 갔을 때도 사고 싶다고 생각 했었는데…
그 때 왜 안 사서 이 고생을 하는지 원…
그치만 기분이 좋다.
가지고 싶은 걸 손에 넣는 것 만큼 기분 전환에 좋은 것도 없을 것 같다.

때 마침 쾌속급행도 타고 꽤 운이 좋은 아침이다.

영업 시간 끝날 걱정이 없으니 천천히 걸어 '콥차이'에 갔다.
어디에 디스플레이 되어 있는지도 다 외우고 있다.
여러가지 목각 인형들이 전시 되어 있다.
오랜만에 보니 반가운 마음에 웃음이 난다.
하지만 이상하다.
코끼리가 보이지 않는다.
여기 저기 다른 곳도 봤지만 코끼리는 없다.

점원을 불러 물어봤다.
얼마 전에 팔렸단다.
불과 보름 전에도 있던 건데…
멍하게 있는 나를 보고 다른 지점에 전화해서 제고 있냐고 알아봐 주시는 친절한 아저씨…
하지만 다른 곳에서도 이미 매진이다.
갑자기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우울증이 두 배로 뛰었다.

터벅터벅 걸어 나와 또 시모키타자와를 방황한다.
더운 날.
이렇게 더운 날 절대 나와서도 안 되고 거리를 걸어서도 안 되는데…
우울하니까 이미 건강이고 뭐고 그냥 걷기 시작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그러다 지쳐서 들어 간 럭셔리해 보이는 커피숍에서 커피를 마시고 폼페이 유적 책을 봤다.
폼페이 유적지에 가보고 싶어졌다.
나중에 꼭 가야지…
그런데도 기분은 좋아질 생각을 않는다.
일기를 쓰려고 다이어리를 폈다.
일본에 오기 전 부터 온 후의 글들.
갑자기 또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럭셔리한 커피숍.
울면 모냥 빠진다.
꾸욱 참는다.
참고 참는다.

한참을 앉아 있었다.
커피는 이미 없어진 지 오래고,
냉수 컵이 비어지기 무섭게 다시 리필해 주시는 사장님.

더 앉아 있다간 계속 우울의 땅을 파고 파다가 마그마가 나올 것 같다.
안되겠다 싶은 마음에 거리로 나왔다.
또 방황한다.

내가 왜 여기 있는지, 여기는 어딘지…
정신이 혼미해져 온다.
당연하다.
난 여름에 약하다.
아니 더위에 약하다.
이런 뙤약볕이 쬐는 날은 절대 나와선 안 되는 날이다.

방황하던 중에 까페 스탭모집 공고를 발견한다.
그냥 지나쳤다가 다시 돌아가 전화번호를 적는다.

마치다로 돌아왔다.

허리 통증은 많이 좋아졌다.
하지만 자전거 패달 밟는 건 좀 힘들다.
천천히 운전해서 집에 돌아왔다.

밥통을 보니 밥이 한 그릇 남아 있다.
다음 사람을 위해서 밥을 맨 마지막에 먹는 사람은 밥을 해둔다.
귀찮다.
그래서 어제 만들어 둔 가토쇼콜라를 꺼냈다.
우적우적.
냉수와 함께 다 먹어 치우고 기분이 좋아졌다.
역시…
단 음식이 필요했던 건가?

인터넷 메신저로 언니랑 대화를 한다.
기분이 많이 좋아졌다.

개와 늑대의 시간 이라는 드라마에서 이수현 역의 이준기가 첫 화 부터 들고 나오는 목재 코끼리 인형이 있다.
그 녀석이랑 참 많이 닮은 코끼리 인형이었다.

코끼리가 좋아서 사려고 했는데 처음엔 돈이 없었고,
두 번 째 갔을 땐 유학생 주제에 인형 같은 거에 돈 쓰는 게 좀 신경 쓰였고,
개늑시에 빠져서 수현이의 지우이고 싶은 마음에 맘 먹고 사러 갔을 땐 이미 팔렸다.

결국 구입엔 실패했지만…
무언가에 열정을 가지고 끝까지 달렸던 내 자신을 바라보자 뿌듯했던 것 같다.
역시 이 녀석은 팬심 아니면 절대 돈을 못 쓰나?
싶으면서도, 열정의 원천이 이준기라는 점에서 좀 좌절하긴 했지만…
그래도 우울증은 많이 없어졌다.
'내가 아직 살아 있구나, 살아도 되는 구나'
이 기분을 느낄 수 있었던 순간의 열정이었던 것 같다.
더워도 죽지 말고 열심히 살라는 신의 작은 선물이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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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Chelsea!!